<나라를 구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 논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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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알아보자.

김귀남(1904~1990)
전남 목포의 정명여학교에 재학 중 1921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군비감축회의를 개최한다는 사실을 신문 보도를 통해 접했다. 김귀남은 같은 학교 김옥실, 주유금, 박복술과 영흥학교 학생들과 힘을 합쳐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 하였다.

이월봉(1915~1977)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1939년에는 서안 한국청년전에, 1940년에는 한국광복군 5지대에 입대하여 활약했다. 1941년 중국전 때는 한간부 등 4단 한청반에서 군사 훈련 과정을 수료했다. 이듬해 한국광복군 제2지대로 편입하여 항일 활동을 벌였다. 광복이 되자, 1946년 6월에 귀국했다. 미혼이었으나 남동생의 아들인 이충국을 양아들로 삼아 자신의 뒤를 이어가게 했다. 1963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 되었다.

정정화(1900~1991)
1900년 8월 3일 수원유수를 지낸 정주영의 2남 4녀 중 셋째 딸로 출생했으며 11세에 김의한과 결혼하였다. 3.1운동이 일어난 후 시아버지인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이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망명하자 친정아버지에게 8백 원을 얻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하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맡았으며 1920년 비밀연락망인 연통제를 통해 국내로 잠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 임시정부 김구로부터 한국의 잔다르크라는 칭송을 받았다. 198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박자혜(1895~1943)
1895년 12월 11일 경기도에서 출생했다. 1919년 봄에 연경대학 의예과에 입학해 의학 공부를 시작했으며, ‘간우회’를 조직하여 의료인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1920년 단재 신채호를 만나 혼인했다. 1922년 국내로 들어와 독립운동을 후원하다가 1943년, 셋방에서 홀로 쓸쓸히 눈을 감았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하였다.

고수선[1898~1989]
학교에서 일본교사 배척 운동을 펼쳤으며,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 때 탑골공원으로 가서 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중순에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군자금 모집 요원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된 뒤 의사인 김태민과 결혼하여 의술을 펼쳤다. 1•4 후퇴 후 전쟁고아들을 거두고 문맹 퇴치를 위한 한글 강습소 제주모자원을 설립했으며, 1969년 어린이집의 시초인 선덕어린이집을 설립했다. 용신봉사상, 만덕봉사상을 수상하였고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김마리아(1892~1944)
황해도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의 교육자이며 독립운동가이다. 정신여학교 교원을 지냈다. 각지를 돌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다 체포되었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회장, 상하이의 대한민국애국 부인회 간부 등을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박차정(1910~1944)
부산 동래 출신으로, 15세 때부터 조선소년동맹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929년 일신여학교를 졸업한 뒤 여성 항일운동에 이바지하던 중,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인 반일학생운동으로 확대시키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듬해 1월 부산방직 파업사건을 주도하다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후,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결혼해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5월, 강서성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중에 사망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최용신(1909~1935)
원산에서 태어났다. 루씨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여자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1년, YWCA 농촌사업부에서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파견되어 농촌교육을 시작하였다. 마을 주민의 협조를 얻어 학교를 짓고 10리 길을 걸어서 다니며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1934년 일본 고베신학교에 유학하였다가 신병으로 귀국했다. 샘골에서 요양하면서도 농촌계몽운동을 계속하던 중에 사망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는 1964년 용신봉사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해 오고 있다.

김락(1863~1929)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서 19세에 이중업과 결혼했다. 1910년 일본과 합병되자 시아버지 이만도가 단식으로 순국하자 남편과 맏아들이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김락은 58세의 나이로 예안의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으며, 이때 받은 고문으로 두 눈을 실명하였다. 김락의 친정과 시가는 모두 항일독립운동가 집안으로, 친인척 중에 추서된 독립운동가가 무려 25명이나 되었다. 김락에게 2001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권기옥(1901~1988)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 숭의여학교에서 3.1운동에 참여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하다가 체포되어 6개월간 복역했다. 출옥 후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다가 윈난 육군항공학교에 입학 한국 최초 여자 비행사가 되었다. 광복 후, 귀국해서 6.25전쟁을 겪고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전 재산을 장학사업에 기부하고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2. 다음 질문에 답하면서 이 책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해 보아요. 독해력을 키워주는 질문이에요.

김귀남이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게 된 계기는?

결혼도 안 한 채 한국광복군 제2지대로 편입하여 항일 활동을 벌였던 여성 독립운동가는?

박자혜가 조직한 의료인 만세 운동 단체는?

고수선은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조국의 독립과 결혼했다고 말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는?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인 반일학생운동으로 확대시키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던 여성 독립운동가는?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던 여성 독립운동가는?

58세의 나이로 예안의 3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권기옥은 왜 여자 비행사의 꿈을 꾸었나?

3. 이 작품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나라를 사랑한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
일제강점기 여전히 유교적이고 봉건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이 독립운동에 뛰어들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 위하는 마음에는 남녀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흔히 여성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유관순 열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들이 자녀를 양육하고 시부모를 봉양하며 가사노동과 농사일을 독립운동과 병행해야 했다. 그들은 어떻게 그 힘든 일들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이 책에는 10명의 대한민국 여성 독립운동가가 등장한다.
전남 목포의 정명여학교에 재학 중 같은 학교 김옥실, 주유금, 박복술과 힘을 합쳐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던 김귀남,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나 결혼도 안 한 채 한국광복군 제2지대로 편입하여 항일 활동을 벌였던 이월봉, 상하이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맡았으며 1920년 비밀연락망인 연통제를 통해 국내로 잠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던 정정화, ‘간우회’를 조직하여 의료인 만세 운동을 주도하고 1922년 국내로 들어와 독립운동을 후원한 단재 신채호의 아내 박자혜,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된 뒤 전쟁고아들을 거두고 문맹 퇴치를 위한 한글 강습소인 제주모자원을 설립했으며, 1969년 어린이집의 시초인 선덕어린이집을 설립했던 고수선,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회장, 상하이의 대한민국애국 부인회 간부 등을 역임하고 각지를 돌며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데 애썼던 김마리아, 15세 때부터 조선소년동맹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인 반일학생운동으로 확대하고, 의열단원으로 활동하였던 박차정, 농촌에 학교를 짓고 농촌계몽운동을 계속하던 중에 사망한 최용신, 58세의 나이로 예안의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고문으로 두 눈을 잃은 김락, 한국 최초 여자 비행사이며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 후,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던 권기옥이 그 주인공이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남성 독립운동가보다 두세 배 분량의 일들을 더 감당해야 했다. 독립을 위해 나섰지만, 여전히 엄마, 아내, 며느리이자 주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항일투쟁은 남성 못지않게 치열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본받아서 우리나라를 잘 보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4. 여성 독립운동가는 남성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많은 일들을 감당해야 했다. 독립을 위해 나섰지만, 엄마, 아내, 며느리이자 주부로서의 역할도 함께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항일투쟁은 치열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어떻게 그 힘든 일들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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