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계간 아동문학평론에 실린 김숙분 대표의 특집(1)
   날짜 : 2016-05-29 17:42:05
조회 : 5,761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가문비입니다.

가문비 출판사 대표이신 김숙분 작가가 <한국아동문학 연구센터>에서 발간하는 계간 아동문학평론 2016년 여름호(159호)에 특집으로 실렸습니다. 내용은 신작 동시 5편과 작가의 문학수업기, 이정석 평론가의 김숙분론입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문학 수업기

존재에 대한 긍정의 시를 쓸 수 있기를

김숙분

 

1959년 7월 13일, 나는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 당시 ‘동국상운’ 이란 택시 회사를 운영하는 젊은 사업가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때 작가를 꿈꾸던 문학청년이었다. 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 시절 글을 쓴다고 머리를 싸매고 밤을 새운 날들도 많았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글을 쓰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래도 여전히 문학도였다고 한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께서 책도 많이 읽어 주시고 글도 써 보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부자였다. 땅도 아주 많았고 서울 근교에 농장도 가지고 있었다. 아침마다 농장에서 아저씨가 갓 짠 우유를 배달해 주었다. 아버지는 자주 농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농장에는 물론 나무가 많았는데 축축한 흙에서 한 무리의 이끼나 버섯 같은 것을 찾는 일이 참 즐거웠다. 어떤 버섯은 예쁜데도 아버지는 독버섯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알까?

 

여덟 살에 서울 덕수초등학교에 입학했다. 3학년까지 아버지는 나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동생이 많아 어머니의 손이 바쁜 탓도 있지만 데려다 주지 않으면 내가 마구 울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회사가 학교 근처에 있었기에 아버지는 학교가 끝나면 얼른 와서 또 나를 피아노 선생님 집에 데려다 주고 갔다. 레슨이 끝났을 때 아버지가 오지 않으면 또 울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아버지는 세계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는 신기하게 글짓기를 아주 잘했다. 3학년 때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손’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를 지어 보라고 우리들에게 말했다. 나는 도형을 척척 그려내는 ‘선생님의 손’이 자인 것도 같았고 컴퍼스인 것도 같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손은 자/ 칠판에 죽죽// 선생님의 손은 컴퍼스/ 칠판에 동글동글’이라고 썼다. 이 동시가 얼마 후 조선일보 어린이날 특집에 실렸다. 나는 신이 나서 매일 매일 동시를 쓰며 놀았던 것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자연에서 우리들이 맘껏 뛰놀게 해야겠다며 아예 농장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니는 마당에 꽃밭을 만들어 갖가지 꽃들을 심었고 봉숭아꽃이 빨갛게 피었을 때 내 손톱에 꽃물을 들여 주기도 했다. 어머니는 여름밤에 별을 보며 꽃들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사전에서 찾아보았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때 하늘에서 별똥별이 직선을 그으며 주욱 떨어졌다. 어머니는 얼른 우리 딸 건강하게 자라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숙명여자중학교에 입학했고 3년 후 창덕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학교 백일장이 해마다 있었고 불조심 주의 기간이면 ‘불조심 강조 글짓기’ 대회가 열리던 것이 생각난다. 학교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고 글짓기 대회에서도 단골로 입상을 하곤 했다. 그때 나는 작가의 꿈을 꾸었다. 문학소녀였던 중고등학교 시절, 책에 빠져 살았고 매일 대학 노트로 예닐곱 장씩 일기를 썼다. 일기장에 그날 이야기도 썼지만 시도 쓰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 글들을 모아 방학이 되면 책으로 묶어 보기도 했다. 그런 놀이가 너무 행복했다.

 

그 시절 나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나에게는 세계였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그 충격으로 돌아가신 것이었다. 나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말은 별로 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시간은 실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치욕의 기억은 알 수 없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 갈증을 느낄 때마다 나는 글을 썼다. 이제는 작가의 꿈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우월한 허위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과 상황을 파괴하기 위해 글을 썼다. 글은 그때마다 상황을 잠시 잊게 해 주었고 다른 곳으로 생각을 유도했다. 다듬고 고쳐 글쓰기를 마치면 거기에 내가 하려던 얘기가 정확하게 들어 있었다. 그 당시 글쓰기는 나에게 치료의 의미였다.

 

나는 벽지의 여교사가 되어 글을 쓰며 소박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춘천교육대학에 시험을 보러갔다. 졸업 후 내가 원하던 대로 벽지로 떠났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강원도 영월군 서면 광전 2리 여촌초등학교였는데 산위에 자그맣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마을로 버스는 고작 하루에 두 번 따닐 뿐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가보는 오지였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뿐이었는데 그 사이로 새파란 강이 흘렀다.

 

나는 열일곱 명의 5학년 아이들과 생활하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과 나물도 캐러 다니고 강 바위에 다닥다닥 수도 없이 붙어 있는 다슬기도 잡으러 다녔다. 더울 땐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느라 얼굴이 새카맣게 타 버리기도 했다. 그곳에 살다 보니 슬픔은 어느 틈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버지가 비록 돌아가셨어도, 가난해도, 이제 나는 행복했다. 얼마만일까, 세상을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마을은 온통 침묵의 생명체들이 밤 내내 써내려간 시였다. 시인은 누구일까? 시인을 알아내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나에게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으로 세상을, 그리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동시를 썼다.

 

그렇게 즐겁게 쓴 동시들이 윤석중 선생님의 추천으로 『교육자료』에 실리게 되었다. 나는 반 아이들과 매일 동시쓰기를 했다. 쓴 시를 응모하여 당선도 되고 상도 타게 되자 아이들은 신 나서 더욱 열심히 글을 썼다. 그때 내가 쓴 동시들은 대부분 자연과 아이들의 노래한 것들이었다. 역사성이나 시대성은 담으려고도 안 했다. 젊은 날의 그 자연이 없었다면 또 아이들이 없었다면 제 아무리 대단한 것을 이룬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산골의 조그마한 하늘은 언제나 푸르고 아름다웠지만 못 견디게 단조로웠다. 어느 날 이른 아침,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멀리서 기러기 떼들이 날아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기러기들은 혹 사냥꾼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와 마음 놓고 강물 위로 바람을 가르며 낮게 날았다. 목이 말랐을까, 아니면 푸른 강이 마음에 들었을까. 하지만 기러기들은 곧 높이 날아오르더니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직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어디로 가는 길일까. 그것을 바라보는데 왠지 나 혼자만 이곳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천릿길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왔을 터이니 기러기들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어느새 2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고독은 정말 못 견디게 힘든 것이었다. 그때 나는 부실한 식사 때문에 위장병까지 얻어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결국 그해 3월 말 신학기가 시작되었는데도 산골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서울로 돌아와 얼마 후 나는 결혼을 했다. 이제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가정주부로서의 삶에 안식을 얻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 나갔다가 구석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을 발견했는데 다름 아닌 <아동문학평론>이었다. 제자리에 서서 훌훌 책장을 넘기며 내용을 살피던 나는 사뭇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책 속에 정말 괜찮은 작품들이 오롯이 모여 있었는데, 작가가 만들어 놓은 비밀의 풍경들이 서평을 쓰는 사람들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시나 동화의 1차 독자는 어린이인데 어른을 향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책값을 지불하고 집으로 가져와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어떤 매혹의 함정에라도 빠진 듯 나는 그동안 써오던 글에 대해 집착에 가까운 애착을 갖게 되었다. 시골 학교 선생을 하며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썼던 내 작품들도 아동문학이라는 장르로 불릴 수 있을까?

 

더 이상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는 아니었지만 다시 어린이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우선 <아동문학평론>을 통해 알게 된 동시작가들의 작품집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나 혼자 쓰고 읽던 글쓰기에서 다른 작가의 글을 읽고 공부하는 글쓰기로 바뀐 것이다. 나는 그동안 쓴 글들을 정리해 <아동문학평론>에 응모도 했다. 1986년 여름호에 당선되면서 비로소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찾게 되었다. 나에게 아동문학은 삶의 새로운 발견이며 기쁨이었다.

 

그때 내가 마치 사명감을 받은 사람처럼 꼭 쓰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행복한 순간들이, 그리고 아버지를 잃었을 때의 불행한 결핍들이 여전히 나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아버지’를 노래한 시들이 유난히 많았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차별과 혐오의 벽을 넘는 이야기였다. 사실 그 이야기조차도 ‘아버지’와 무관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잃으면서 깨닫게 된 세상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동시 ‘철조망과 나팔꽃’은 그런 이야기였다. 그러니 나는 어린 시절의 삶과 기억을 문학의 전부로 삼은 셈이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시집 <산의 향기>와 <해님의 마침표>에 담아냈다.

 

문학은 기쁨, 슬픔, 우정, 사랑, 희망, 실망, 야유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조건에 대한 카타르시스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의 일차적 기능은 우선 보상의 매커니즘이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나의 문학 습작 역시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종교적 기능을 대신하는 존재로서 의식 속에서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존재였으며 나의 작품은 그 소산물이었다. 하지만 이제 문학은 나의 마음을 바꾸는 세계이자 예술이지 하나의 수단은 아니다. 새로운 발견이며 존재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다.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고 교문 밖으로 나오면 온갖 잡상인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는데 그들은 어린 우리에게 최고의 친구였다. 그중 뽑기 장사 아저씨를 나는 제일 좋아했다. 뽑기 장사 아저씨는 국자에 설탕을 넣고 살살 녹여 별을 찍어 내고 있었다. 우리들이 우르르 몰려가 구경하면 아저씨의 얼굴에 더없는 행복이 흘렀다. 아저씨가 만들어 주시는 별이 어찌나 향기롭고 달콤하던지 뽑기 먹는 재미로 학교에 다닐 정도였다. 그런데 영월 산골에서 혼자 살 때 국자 모양이 북두칠성이 눈에 들어오자 웬일인지 초등학교 시절 우리를 기다리던 초라하고 늙은 뽑기 장사 아저씨가 떠올랐다. 하늘을 두리번거리니 뽑기 장수 아저씨가 찍어 내던 그 달콤한 별들이 그곳 하늘 가득히 널려 있는 것이었다. 왜 그때 아저씨를 떠올렸을까. 분명 아저씨가 나의 마음을 따듯하게 녹여 주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그런 동시를 쓸 수 있을까? 입안에서 녹여 먹으면 마침내는 가슴에서 다시 별로 뜨는 그런 동시 말이다. 그런 동시야말로 존재에 대한 무한한 긍정의 시일 것이다.

 

 

 

신작 동시

꽃단추

김숙분

 

옷의 제자리에 꽃단추를 단다.

실이 뿌리마냥 박혀 있다.

이제 옷을 입어본다.

옷에 예쁜 꽃단추가 돋아난다.

제자리에 핀 꽃단추 4개

 

들판에도 꽃단추들이

피어 있었다.

실뿌리를 박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땅이 누군가의 옷이란 걸 그제야 알았다.

꽃단추가 떨어지면 큰일 나겠다.

 

 

 

 

달팽이

김숙분

 

달팽이가

집이 무거운지 힘겹게

기어가고 있다. 


전세값이 치솟는

우리 동네처럼

달팽이네 동네도 그런가 봐


겨우 혼자 살 만한

집이라도

내 집을 마련한 달팽이


좀 무거워도

이사갈 때 지고가면

맘편하겠네.


나이테

김숙분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불러 주어 행복했는데

 

어느 날, 사냥꾼이

나뭇가지로 새총을 만들었어.

나무는 가슴이 아파 울었어.

 

“나무야, 울지 마

너는 죄를 짓지 않았어.”

해님이 달님이 바람님이 다독였지.

 

새들은 다시 찾아오고

떠난 사냥꾼은 잊혔지만

 

상처는 몸속 깊은 곳에

고스란히 남았어.

 

지워지지 않는 상처들,

나무의 나이가 되었어.

 

 

 

 

 

 

 

 

 

감자

김숙분

 

처음 땅속에서 눈을 떴을 때

너무나 깜깜하고 조용해서

울었을 거야.

 

그래서 그냥 잤을 거야

가끔 일어나 스며든 빗물로

목을 축이고 또 잤을 거야

 

밖으로 나가려고도

두더지처럼 돌아다니려고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건 게을러서가 아니야

감자는 자는 게 일이야

그래서 저렇게 토실토실 살이 찐 거야.

 

 

 

 

 

전학생

김숙분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꽁꽁 얼어붙은 얼굴로

자기소개를 한다.

 

우리는 와아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친구 얼굴이 사르르 녹는다.

머리 위로 수증기가 날아간다.

 

 

연 보

 

 

 

1959. 7. 13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출생

1972. 2.서울 덕수 초등학교 졸업

1975. 2.서울 숙명여중 졸업

1978.2.서울 창덕여자 고등학교 졸업

1980. 2.춘천 교육대학 졸업

1980. 3. ~ 1982. 2.영월 여촌 초등학교 교사

1986.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 동시 당선

1987.2.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대학교 유아교육과 졸업

1995.새벗문학상 수상

1996.국민일보 신앙시 공모 우수상

1998.시집 『산의 향기』(아동문예사) 출간

1999.위의 동시집으로 세종아동문학상 수상

2001.시집 『해님의 마침표』(21문학과 문화) 출간

2002.위의 동시집으로 은하수동시문학상 대상수상

2005.㈜ 도서출판 가문비 창립

2005.숲에서 이야기가 꿈틀꿈틀』(가문비),『숲으로간 고양이』 (가문비) 출간

2006.2공저시집 『쇠똥구리는 똥을 더럽다고 안 하지』(가문비)출간

2006.5 『숲이 된 연어』 (가문비)출간

2006. 9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 입학

2006.2『숲을 사랑한 사람, 문국현』(가문비),『청계천다리 이야기』 (가문비)출간

2006.12 『신화가 숨겨진 나무들』 (가문비)출간

2007. 3 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 동화 당선

2007.5 『여우야 여우야 어디 있니』(가문비)출간

2007.9 『법을 아는 어린이가 리더가 된다』(가문비)출간

2008. 12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졸업

논문 <박두순 동시연구>(아니마의 시적 표상을 중심으로)

2011.11.『나라 꽃, 무궁화를 찾아서』(가문비,2011)출간

2011. 2.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2011.7. 『소태수 선생님, 정의가 뭐예요?』(공저, 가문비)출간

2013.12. 『탈무드 이야기』(가문비)출간

2013. 4학년 2학기 국어활동㉯에 동화 「저작권 침해」가 수록됨.

2015.04 『김숙분 동시선집』(지식을 만드는 지식)출간

현재 도서출판 가문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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