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계간 아동문학평론에 실린 김숙분 대표의 특집(2)
   날짜 : 2016-05-29 17: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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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분 동시문학에 나타난 생태학적 상상력

이정석

 

1. 들어가며

김숙분(1959~ )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동시인 중 한 사람이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종헌은 1980년대 동시를 중심으로 쓴「시대정신 표출에 한계를 지녀」라는 글에서 80년대를 그 형식상의 변화를 시작으로 소재와 주제의 다양화에 힘쓰던 시기로 전제하고, 당시 새롭게 등장한 신인들의 작품 특성에 따라 고향의 서정과 동화적 상상력, 리얼리티와 서정적 회감, 동시의 남성성과 일탈의 동심, 역사의식과 율격의 계승 등 네 가지 부류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첫째 전통적인 순수서정성을 바탕으로 하여 산업화의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시인들로 이창건, 김숙분, 이화주 등이 있고, 둘째 산업화의 영향으로 소외된 공간에 대한 관심이나 어린이를 사회적 구성원으로 타자성을 인정한 시인들로 임길택, 정두리, 전병호, 김은영 등이 있고, 셋째 동심을 자연-순수-여성성으로 인식하던 틀을 벗어나 도시-일탈-남성성으로 인식하려는 실험시를 쓴 시인들로 권영상, 신형건 등이 있으며, 넷째 19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역사의식을 장동시와 연작동시의 형태를 빌려 활발하게 창작하던 시인들로 박성만, 윤삼현, 이정석 등이 있다고 하였다.

 

자연을 중심적 소재로 당대 지배적인 동심관인 ‘어린이-자연-아름다움-사랑’으로 이어지는 시적 사유를 지닌 시인으로 김숙분, 이화주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의인화 기법과 사물의 속성을 직접 비유하는 표현법, 그리고 착한 어린의 모습을 주제로 담는 것 등 당대의 아동문학을 그대로 닮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김숙분은 여전히 자연과 인간의 삶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동시 ‘철조망과 나팔꽃’에서처럼 어울릴 수 없는 두 이미지를 전이시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김종헌의 글에 의하면 김숙분은 자연을 중심적 소재로 당대 지배적인 동심관인 어린이와 고향의 자연 그리고 아름다움과 사랑을 그린 80년대 대표적인 시인이라는 것이다.

김숙분은 1986년《아동문학평론》지 신인문학상에「꿈」외 2편의 동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후 십 년이 거의 다된 1995년에「달」등 3편으로 새벗문학상을 받았고, 1996년《국민일보》신앙시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김숙분은 지금까지 4권의 동시집과 몇 권의 동화집, 아동용 역사서 등을 펴냈다. 그의 동시집으로는 등단 12년 만에 펴낸 첫 동시집『산의 향기』(1998), 제2동시집『해님의 마침표』(2002), 공저 시집인 제3동시집『쇠똥구리는 똥을 더럽다고 안하지』(2006), 제4동시집『김숙분 동시선집』(2015)이 있다. 첫 동시집『산의 향기』로 1999년 세종아동문학상을, 제2동시집『해님의 마침표』로 2003년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김숙분 동시문학에 대해 글을 쓴 이로는 최지훈, 박두순, 전병호, 이정석 등이 있다. 작품론으로는 전병호의「동시, 사랑의 문학임을 증거하기」, 서평으로는 제1동시집의 해설인 박두순의「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신의 얼굴」, 제2동시집 서평인 최지훈의「신앙 정서로 젖은 향기」, 전병호의「육화된 사랑의 메시지」, 제3동시집 서평인 이정석의「생태동시집 속의 자연, 그 조화로운 공존」등이다. 최지훈은 김숙분 동시에 대하여‘깊은 신앙으로 씻어낸 맑은 정서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이를 신앙적으로 수용하면서 신께 감사하는 겸허한 자세가 독자로 하여금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고 하였고, 박두순은‘그의 시와 의식의 초점은 우리 생활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3대 요소인 몸과 마음, 그리고 환경에 집중적으로 맞춰져 있으며, 풍부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전병호는 김숙분을‘내일을 살아갈 어린이들에게 아가페적인 사랑의 정신을 심어주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는 시인으로 평하였고, 이정석은 제3동시집에 대하여‘생태동시를 통해 공생, 공존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자연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관심과 배려가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됨을 알려 주고 있다’고 하였다. 요약하면 김숙분의 동시문학은 기독교적 사랑과 자연 환경에 대한 접근 등이 강하였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앞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숙분 동시문학에 나타난 공존의 생태학적 상상력과 뛰어난 감각적 이미지 전달, 기독교적 신앙심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2. 공존의 생태학적 상상력

생태학(Ecology)이란‘생물 상호간의 관계 및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를 구명하는 학문’을 말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관계’라는 말이다. 즉 생물과 생물의 관계,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생태학이다. 생태학적 상상력(Ecological Imagination)은 인간과 다른 생물들과의 관계, 나아가 자연과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사람의 오감과 인식을 뛰어넘어 다양한 의미를 찾는 상상의 힘을 말하며, 또한 생태동시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생명과 환경, 생명과 생명 사이의 관계를 동심의 눈을 통해 살펴보고 전개한 시라고 할 수 있다. 크게는 우주의 모든 존재, 작게는 지구상의 모든 사물이 가지는 원래의 모습과 사물끼리 유기적 관련을 맺으면서 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순수한 어린이 마음으로 살펴보는 시가 생태동시라고 할 수 있다.

동심은 자연친화적이고 환경생태 중심적이며, 아동의 사고 체제 또한 물활론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에 아동문학 특히 동시문학은 제재 면에서 생래적으로 생태학적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그동안 동시를 포함한 아동문학의 생태학적 관점의 논의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김용희, 이정석, 정선혜, 김영관, 임도한, 진선희 등 정도를 들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면에서 생태주의나 생태학적 상상력을 살펴보는 이유는 김숙분의 동시문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말이 이것, 즉‘생태학적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그와 산림청장의 2인 공저 작품집인 제3동시집『쇠똥구리는 똥을 더럽다고 안하지』는 표지에 아예‘산림청장과 동시작가가 함께 쓴 생태동시집’이라는 앞말이 붙어있다. 그만큼 김숙분의 아동문학에서 생태주의가 드러난 생태동시들이 제1동시집부터 제4동시집까지 고르게 실려 있다는 것이다. 이글에서는 그의 생태동시들 중에서 특히 생명 공존에 관한 동시에 대하여 특히 주목하고자 한다.

생태동시에는 환경파괴에 대한 고발 동시에서부터 대안적 생태사회에 관한 동시 등까지 여러 영역에 따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환경파괴나 생태계 파괴는‘자연 정복이나 지배’라는 인간중심의 도구주의적 발상에서 출발한 기계론적 자연관 때문에 발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 사물과 사물 등의 관계를 이원론적 대립이나 갈등의 관계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 종말의 필연적 결말을 막고 자연 환경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인간과 자연이 상호 의존하는 일원론 입장의 유기론적 자연관이 더 필요하다.

즉 김숙분의 생태동시에서 보여주는 생명 공존 같은 태도가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그의 생태동시에는 갈등이나 대립으로 새로운 결과가 산출되는 작품은 없다. 배려와 이해로써 공존의 결과를 산출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정반합이라는 철학적 변증법의 적용보다는 사물-관계-공존이라는 생태학적 변증법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김숙분의 대표적인 동시「철조망과 나팔꽃」을 살펴보자.

 

철조망 손엔/ 가시가 돋혀 있었습니다.// '다칠라….'/ 모두 다 인상을 쓰며/ 그 앞을 지나쳤습니다.// 철조망은/ 외로웠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조그맣고 여린 손이/ 철조망을 꼬옥 붙잡았습니다.// 나팔꽃/ 덩굴손이었습니다./ "넌 내가 무섭지 않니?"/ "당신이 아니었다면 난 일어설 수 없었어요."// 철조망은/ 다른 손도 내밀었습니다.

-「철조망과 나팔꽃」(1998,2006) 전문-

 

제1동시집에 실린「철조망과 나팔꽃」은 완성도가 높은 우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포용과 배려, 공존과 조화를 강조하고 있는 동시이다.

언뜻 보면‘철조망-나팔꽃’의 관계는 대립이나 갈등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별개의 독자적인 존재로서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관계라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렇게 서로 배반하지 않고 공생공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자연 생태계의 일반적인 법칙이다. 여기에서 철조망-나팔꽃-공존(포용)이라는 생태학적 변증법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철조망-나팔꽃’의 관계가 이질적이지만 신선하게 느끼는 것은 어울리기 힘든 관계인데도 서로 공존의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철조망’이 가지는 상징성은 단절, 분리, 거부, 소외, 고독, 공포, 절망, 살벌 등이다. 반면에‘나팔꽃’은 생명력, 따뜻함, 희망, 아름다움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어 본 우리이기 때문에 더욱 철조망의 의미가 훨씬 강렬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는‘철조망-나팔꽃’이외에도‘가시-덩굴손’,‘외로웠습니다-붙잡았습니다’와 같은 상대적인 관계를 지닌 시어들도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은 마지막 6연이 아닌가 한다. 김숙분의 생태학적 상상력이 아낌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다.‘철조망은/ 다른 손도 내밀었습니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내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다른 손’은 내놓지 않았던 남은 한쪽 손의 의미도 있지만 외로움 때문에 숨겨둔 자신의 진정성이나 진실성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손을 내미는 행위가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구조, 구원, 동의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상기할 때‘다른 손’은 영혼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날카로운‘철조망’의 진심을 발견할 수 있는 도구가 다름 아닌‘손’으로 표출된, 남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는 사실이다. 결국「철조망과 나팔꽃」은 인간사회에서도 남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은 남에 대한 작은 관심과 배려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좋은 동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온 계절을/ 발가벗고 뒹굴기만 했지요.// 하지만/ 온몸이 슬픈 가슴뿐이라면/ 믿을 사람 있을까요?// 간절히 푸른 꿈을 꾸며/ 빗줄기 아무리 맞아도/ 새싹 하나 틔우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이었어요./ 내 등을 어루만지던 그에게/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지요./ “나도 푸르러지고 싶어요.”// 그는 나를/ 깊고 촉촉한 숲까지 안고 갔어요./ 그리고 땀방울 젖은 이마를 대고/ 속삭였지요.// “바위야,/ 이제 곧 네 꿈이 이루어질 거야./ 푸른 바위가 될 수 있단다.”// 그는 시인이었어요. -「바위와 시인」(1998) 전문-

 

제1동시집에 실린「바위와 시인」에서도‘바위-시인’의 관계는 대립이나 갈등의 관계가 아님은 확실하다. 바위와 시인은 별개의 존재이면서 작품 전개상 상호 보완적, 상호 의존적 관계이다. 앞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바위-시인-공존(푸른 바위)이라는 생태학적 변증법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생명 공존에 관한 동시이면서 대안적 생태사회에 관한 동시이기도 하다.

‘바위’는 스스로 장소 이동이 불가능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푸른 꿈을 이룰 수 없다. 반면‘시인’은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 푸른 꿈도 꿀 수 있는 존재이다. 왜 이렇게 어울리기 힘든, 배타적인 관계인 바위와 시인이 공존과 배려의 관계로 발전하였을까. 그리고 왜 하필 그 공존의 주체가 시인이었을까. 그것은 김숙분의 창의적인 생태학적 상상력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메마른 바위를 습기가 많은 숲으로 옮겨줘 푸른 바위의 꿈을 성취하도록 도움을 주는 이가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이면서 푸른 꿈을 자주 꾸는 시인이라는 점이다. 시인이야말로 푸른 바위라는 꿈을 만들어주는 적격자가 아닌가.

 

“남북을 가로막는 일은/ 정말 고통스러워.”/ 휴전선 철조망이/ 풀꽃에게 속삭였습니다.// “내가 도와 줄 게.”/ 이슬이 아침마다/ 풀꽃 위에/ 철조망 위에/ 조용히 내렸습니다.// 추운 겨울/ 마른 풀들은/ 철조망 언 발 위에 엎드리고/ 철조망은 외롭게/ 겨울을 견뎌냈습니다.// 봄이 오는 날,/ 이슬은 다시/ 새로 돋은 풀들과/ 철조망 위에/ 조용히 내렸습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침내 어느 겨울/ 녹슬어 서걱이던 철조망이/ 마른 풀들과 함께/ 고이 땅에 엎드렸습니다. -「휴전선의 철조망」전문(2002)-

 

숲에 들어서면/ 엄마의 마음/ 알 수 있다.// 좁고 길게 뻗은/ 작은 길을 걸으면/ 숲 속 모든 게/ 정겨운 것처럼// 엄마 가슴에/ 길게 서있는/ 작은 길을 걸으면// 초롱초롱 사랑꽃이/ 수없이 돋은 걸/ 알 수 있다.// 먼지 이는 세상을/ 바쁘게 돌다가/ 파란 숲에 들어서면// 내 가슴 이렇게/ 편안히 가라앉는 건/ 숲이/ 엄마를 닮아서이다.

-「어머니의 숲」전문(1998, 2002)-

 

「휴전선의 철조망」과「어머니의 숲」은 제2동시집에 실린 작품이다.「휴전선의 철조망」은‘철조망-이슬-공존(자연 회귀)’으로,「어머니의 숲」은‘숲-나-공존(엄마의 마음)’으로 생태학적 변증법이 적용됨을 알 수 있다.

「휴전선의 철조망」의 주제는 남북의 평화통일에 대한 간절한 희구이지만 생태주의 측면으로 바라보면 모든 사물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자연 회귀를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위적인 가공물인 철조망이 세월과 이슬의 도움으로 녹슬고 부스러지면서 마른 풀들과 함께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가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행‘고이 땅에 엎드렸습니다’는 자연 회귀이면서 자연 동화나 자연 순응이며 휴전선의 소멸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남과 북의 공존 즉 자연스런 평화 통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숲」의 주제는 어머니 품처럼 편안한 숲의 예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숲’을 직접적으로‘어머니 마음’이라고 정의하지 않는 점이 눈에 띤다. 먼지 이는 세상을/ 바쁘게 돌아다닌‘내 가슴’이 파란 숲에 들어서니까 숲이 어머니의 품이 되어 치유 받고 편안해진다는 것이다.‘숲-나-어머니의 마음’이라는 과정을 거친 생태학적 변증법이 적용된 것이다. 말하자면 숲과 내가 건강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공생 공존을 한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어떤 것이 힐링인지, 또 인간에게 푸른 숲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증명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빗방울과 바람은/시멘트 바닥과/친구가 되고 싶었어요//“마음을 열어봐./네겐 들어갈/틈이 없구나.”//닫힌 가슴을/자꾸자꾸/두드렸어요//마침내/조그마한/틈이 보였어요//빗방울이 얼른/비집고 들어갔어요./바람따라 민들레 씨도/들어갔어요//싹이 돋았어요/온 사람들 눈길이/틈으로 쏠렸어요. -「민들레」(2002, 2006) 전문-

 

「민들레」는 제3시집에 실려 있지만 원래 제2동시집에는「틈」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시멘트 바닥-민들레 씨-공존(생명 탄생)’라는 생태학적 변증법이 드러나 있다. 쉽게 살수 없는 척박한 자연 환경 속에서 서로 도와 가면서 극복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 생태계의 공생 공존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 속 중심축에는 이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두 대상이 있다.‘민들레 씨-시멘트 바닥’은 함께 공생할 수 없는 관계이다. 더욱이 시멘트 바닥은 인간의 손길이 첨가된 더 완강해진 무생물이다. 이 작품에는 시멘트와의 이질적인 관계를 완화시켜 동반적 관계로 바꾸는 매개체적 대상인 틈과 빗방울과 바람과 흙이 등장한다. 물론 흙이 필수적인 요소로 저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연에서 존재하는 생물, 무생물 들은 상호의존적, 보완적이면서 공존공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상호 관계가 생태계의 평형상태를 유지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마을 양재천은/ 참 아름다워요/ 개천가엔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맑은 물엔/ 잉어들이 살아요// 내겐 조그만 다람쥐가 있었지요/ 좁은 우리에서/ 당근이나 먹던 다람쥐// 어느 날 양재천에 들고 와/ 우리 문을 열어 주었지요// 두려운 듯 밖으로/ 조심조심 나가보더니// 금세 자기 뒷다리가/ 얼마나 빠른지/ 알아차렸죠// 양재천에서/ 다람쥐를 보았다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하지만 한 마리가 아니지요/ 벌써 친구가 생긴/ 다람쥐 -「다람쥐」전문(2006)-

 

제3시집에 실린「다람쥐」는 집에서 기르던 다람쥐를 자연 방사함으로써 건강하게 회복되어 가는 자연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나-다람쥐-공존(자연 회복)’이라는 생태학적 변증법이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자연 상태의 다람쥐를 강제로 잡아다가 집안 우리에서 기르는 일은 정상적인 생태계를 위협하는 명백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의 결과이다. 그런 다람쥐를 양재천에 풀어주는 행위는 작게는 사람과 다람쥐의 관계, 다람쥐와 하천의 관계, 다람쥐와 다른 다람쥐들과의 관계가 회복됨을 의미하며, 넓게는 자연생태계의 회복 또는 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3연에서 시적화자가 갑작스럽게 다람쥐 우리의 문을 열어준 이유가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마지막 연을 보면 다람쥐의 방사 이유가 귀납적으로 제시됨을 알 수 있다.‘벌써 친구가 생긴/ 다람쥐’는 방사 다람쥐의 완벽한 양재천 적응과 다람쥐 개체수 확대 등을 의미한다. 여기서 다람쥐 방사에 대한 시적화자의 깊은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다람쥐 본능의 자연회복을 알려주는 시구‘금세 자기 뒷다리가/ 얼마나 빠른지/ 알아차렸죠’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에 갇혀 사는 다람쥐의 답답함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3. 감각적 경향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정서를 인간의 구체적인 오감 즉 시각, 촉각 등의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살펴보면 이장희의「봄은 고양이로다」, 이육사의「청포도」, 김영랑의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이」등에서 비교적 감각적인 경향이 잘 나타나 있다. 김광균의「데생」을 보면‘1.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 위에 밤이 켜진다. 2.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불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에 후각적, 시각적 이미지 등 감각적 이미지가 너무 선명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문학에서는 이런 감각적 경향을 보이는 작품들이 흔하지 않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김숙분을 들 수 있는데 김숙분의 경우에도 감각적인 경향이 제1동시집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후 작품집에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이글 서두에 인용한 김종헌의 언급처럼 제1동시집이‘자연과 인간의 삶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달빛은/ 금방 짜낸 기름처럼/ 조록조록/ 내리고 있다.// 나뭇가지 타고/ 벽을 타고/ 졸졸졸/ 흘러// 온 마당/ 그득/ 넘실거린다.// 반들반들/ 귤빛으로/ 윤기 나는 세상.// 검푸른/ 밤하늘에/ 조그마한/ 샘 하나// 누군가/ 쉬지 않고/ 퍼내는데도// 여전히/ 찰방거리고 있다.

-「달」(1998) 전문-

 

그 조그만 부리로/ 푸른 옥양목 하늘/ 한쪽 끝 물고 나는/ 새// 작은 가슴에선/ 언제나 딩동댕/ 맑은 종소리// 날개 끝엔/ 한없이 흘러내리는/ 햇살// 작은 새/ 네가 부럽다. -「새」 (1998)전문-

 

나뭇잎 손바닥은/ 반짝반짝/ 햇살에/ 윤이 나지만// 뒤집어/ 손등을 보아요/ 서늘한 그늘이/ 한 줌씩 고여 있어요.// 잘랑잘랑/ 그 손 흔들어/ 샘물 같은 그늘을/ 흘려보내 주지요.// 밑둥에 기대어/ 앉아 있으면/ 온몸이 잘박잘박/ 초록물에 잠겨요.

-「나뭇잎」(1998) 전문-

 

「달」,「새」,「나뭇잎」은 모두 제1동시집에 실린 작품들로 감각적인 경향을 보인 대표적인 동시들이다.「달」은 달빛이 쏟아지는 아름다운 밤풍경의 정취를 표현을 한 작품이고,「새」는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부러운 새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며,「나뭇잎」은 나무 아래에 앉아서 나뭇잎 그늘이 내려주는 초록물에 잠기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달」에서는 달빛을‘금방 짜낸 기름’으로 표현 한 것과 달빛 가득한 밤풍경을‘반들반들 귤빛으로 윤기나는 세상’으로 표현한 것이 특히 감각적이다. 이 두 시구는 시각적 이미지이지만 고소한 기름과 향긋한 귤 향기의 후각적 이미지가 교묘히 결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내리고 있다’,‘넘실거린다’,‘찰방거리고 있다’는 등 촉각적, 시각적 이미지의 서술어를 사용함으로써 밤풍경이 온통 달빛 속에 묻혀 있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새」에서는 새의 부리와 가슴과 날개라는 세 기관을 각각 푸른 하늘과 종소리 그리고 햇살을 연결 지어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1연 새의 부리 끝으로‘푸른 옥양목 하늘/ 한쪽 끝 물고 나는’표현이나 3연의 날개 끝으로‘한없이 흘러내리는/ 햇살’은 김숙분의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언어 조탁 능력이 돋보이는 시구라고 할 수 있다.

「나뭇잎」에서는‘반짝반짝’,‘잘랑잘랑’,‘잘박잘박’등의 의태어와 의성어로 활기차고 동적인 느낌을 주면서 나뭇잎이 샘물 같은 시원한 그늘을 흘러 내려 준다든지, 나무 밑둥에 앉아 있는 시적 화자의 온몸이 초록물에 잠기도록 한다든지 하는 감각적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4. 기독교적 신앙심

 

동시라는 그릇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 그의 시이다. 그러나 그에게 정작 기독교적 세계관을 표면적으로 강하게 드러내는 시는 불과 몇 편 되지 않는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분명 그의 삶을 지배하지만 그것은 이미 생활 속의 정서로 깊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적 가치관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종교시보다 오히려 더 심화된 종교적 가치관을 독자들의 마음에 은근히 심어주게 되는 측면이 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따듯한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이것이 김숙분 동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이 글은 김숙분의 동시문학에 깔려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전병호의 분석이다. 몇몇 시인들이 보여주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신앙시나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시에 대비하여 김숙분의 작품에서는‘심화된 종교적 가치관을 독자들의 마음에 은근히 심어주고’있다는 것이다. 그의 내면적인 신앙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최지훈도 김숙분의 동시에 대하여‘깊은 신앙으로 씻어낸 맑은 정서적인 눈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고 하였고, 박두순도‘그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생활하고, 신에게 마음을 기대고 살아간다’고 하였다. 최지훈, 박두순, 전병호 모두 김숙분의 내면적인 깊은 기독교적 신앙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햇살이 골고루 내리네/ 열매에 단맛이 드네/ 농부의 마음처럼/ 하나님의 웃음도 뿌려지고 있네// 빗줄기가 골고루 내리네/ 곡식이 단단하게 여무네/ 가난 자의 슬픔처럼/ 하나님의 눈물도 뿌려지고 있네

-「가을․2」(2006) 전문-

 

찰흙으로/ 토끼, 사자, 기린을 만들다가/ 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암만 봐도/ 나를 닮았다.// 후우--// 생명을 넣어주고 싶었다./ 아마 하나님도 그러셨나 보다. -「찰흙놀이」(2014) 전문-

 

「가을․2」와「찰흙놀이」는 기독교적 신앙심이 잘 녹아든 작품들 중 일부이다.「가을․2」는 가을철 풍요로운 수확물에 뿌려진 신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으며,「찰흙놀이」는 간단한 찰흙놀이 속에 내포한 신의 인간 창조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런 김숙분의 기독교적 신앙심은 제1동시집부터 제4동시집까지 고루 드러나 있다.

「가을․2」에서 나타난 신의 모습은 대단히 평범하게 일상적인 삶을 누리는 보통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농부의 마음’과‘가난 자의 슬픔’는 농부이면서 우리 이웃인 장삼이사, 갑남을녀의 마음과 슬픔이며 그것이 바로 신의 웃음과 눈물이라는 것이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농부들의 땀과 눈물로 완성된 가을의 풍요로움이 드러나지만 내면적으로는 가을 열매의 단맛과 곡식의 단단함은 신의 사랑과 은총의 결과임을 암시하고 있다. 김숙분의 종교적 가치관이나 신앙심이 잘 녹아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찰흙놀이」에서는 시적화자 자신이 만든 매끈한 찰흙 사람을 보면서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는 욕심을, 자연스럽게 신의 인간 창조의 당위성과 연결시키고 있다. 시적 비유가 매우 적절하고 일정한 논리성도 유지하고 있다. 창세기 2장의 한 부분인‘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앞의 인용문에서‘기독교적 세계관을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전병호의 말처럼 이 작품을 읽다보면 저절로 기독교적 세계관이 따뜻하게 다가옴을 알 수 있다. 이 작품 중‘후우--// 생명을 넣어주고 싶었다.’는 시적화자의 간절한 소망이 배어있는 시구라고 할 수 있다.

 

5. 나가며

이 글은 김숙분 동시문학에 나타난 특성 중에 극히 일부분만 살펴본 것이다. 앞 본론에서 공존의 생태학적 상상력, 뛰어난 감각적 이미지 전달, 기독교적 신앙심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짚어 보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들은 따로 분석하지 못했다. 김숙분은『은하수 동시문학상 수상 작품집』(2003)에 실린 수상 소감에서‘아이들은 보통 울 때 엄마를 부르면서 우는데 나는 아버지를 부르면서 울었다.…(가운데 줄임)…아버지란 이름만 들어도 숭고하고 아름답기만 하다…(가운데 줄임)…아버지에 대한 향수에서부터 내 문학 동시가 시작된 것 같다’로 하였을 만큼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동시 작품 속에 많이 스며들어 있다. 다음은 동시「아버지의 등」이다.

 

무엇이든 업어 주는/ 아버지의 등// 땀방울 섞인/ 두엄을 져다/ 식물에게 먹이고// 괭이 호미/ 업고 가서/ 김도 매어 주시고// 가을이면/ 등 가득/ 과일을 업고 오신다.// 걸음 불편하신/ 할머니도/ 업어 주시는// 지게 등만큼/ 튼튼한/ 아버지의 등

-「아버지의 등」(1998) 전문-

 

「아버지의 등」은 가정에서 든든한 기둥인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궂은일, 농삿일, 기쁜 일, 어려운 일, 도움 줄 일… 튼튼한 등을 통해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등만 보일 뿐 웃는 얼굴이나 땀 흘린 앞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등을 보여주는 것은 내면의 진실까지 온전히 드러내며 자신을 낮추는 행위이다. 또한 업어주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봉사와 배려, 자신의 행동에 대한 믿음성과 책임감을 다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아버지의 웃음이나 땀보다는 아버지의 등이 훨씬‘숭고’하다는 것을 이 작품이 보여주고 있다. 김숙분의 아버지에 대한 최고의 존경심을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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