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소개해 주세요.
예비 초등교사들의 교과외 문화예술 동아리인 인형극회 <청개구리> 지도교수로 대본 창작과 인형극 연출을 하며 인형극의 현장 보급과 활성화를 위해 어언 30여 년간 쉴 틈 없이 달려 왔습니다. 초등교원 양성대학의 동아리 활동이므로 인형극의 내용 구성은 주로 어린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생활 속 이야기에 기반을 두고 있기 마련인데요. 인형극 동아리 지도교수를 역임하며 시종일관 역점을 두고 지도해온 것이 바로 ‘창작 대본’입니다. 동화라든가 기존의 다른 문학 작품들을 각색해서 만든 인형극을 무대에 올리는 것이 상례인 환경에서 ‘창작 대본’에 기반한 작품이 아니면 무대에 올리지 않는다는 것을 암묵적 불문율로 지금껏 굳게 지켜왔습니다. 그간 인형극 동아리에서 배출한 제자들이 전국 초등학교 현장에서 ‘메이커 교육(maker education)’에 기반한 창작 인형극 교수·학습 과정을 통해 참여와 활동 중심의 창의·융합형 미래 교육을 선도해 나가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처럼 제 작품 세계는 어린이들의 일상 속 친근한 에피소드에 터를 둔 이야기로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수 있는 가상 맥락 속 극화 활동을 통해 공감하고 배려하는 삶의 소중함을 스스로 일깨워 나갈 수 있도록 고안한 희곡 문학 고유의 문학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2. 『까막골 보임누리꽃의 비밀』은 어떻게 탄생되었나요?
“마음과 마음이 ‘긋닛긋닛하게’ 마법의 끈처럼”이라는 작가의 말에 『까막골 보임누리꽃의 비밀』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요약되는 지금-여기의 포스트 휴먼 시대에 인공지능(AI)이라든가 로봇과 같은 기계와 우리 인간을 구분짓는 것은 결국 마음의 보물상자와도 같은 마음샘에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마음결’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따뜻한 피가 흐르고 보드라운 살갗이 있는 생명체인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의 처지와 상황에 공감하고 감응하는 마음의 결이 마치 마법의 끈처럼 ‘긋닛긋닛하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면면히 흐르고 있는 반면 기계의 거친 질감으로 장착된 로봇에게는 입력된 정보에 따라 차가운 전류가 무심코 흐르며 에너지가 다만 소모되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솔이는 네 살 무렵 몹쓸 돌림병에 걸려 갖은 고난을 겪지만 신통한 약 한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앞이 안 보이는 처지가 돼 “솔이는 깜깜~ 동굴처럼 깜깜~ 해님 떠도 깜깜~ 달님 떠도 깜깜~”이라며 동네 친구들에게 늘 놀림과 따돌림을 받곤 하지요. 그러나 정작 골목대장 깨달이가 돌림병에 걸리자 친구의 병을 낫게 해줄 ‘보임누리꽃’을 구하기 위해 땅나라에서 온 토움이와 함께 까막골로 모험의 길을 떠납니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솔이와 토움이가 어렵사리 구해온 ‘보임누리꽃’ 달인 물을 먹고 말끔하게 돌림병을 치유한 깨달이가 지난 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뼈저린 반성과 아울러 친구의 이타적 사랑의 마음에 감동하며 솔이에게 건네는 질문과 솔이의 응답에 가만히 귀기울여 보세요. 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두 친구의 대화 속에 보물상자처럼 소중하게 담겨 있습니다.
깨달이: 솔이야, 근데 넌 울퉁불퉁~ 울그락, 울긋불긋~ 불그락 돌림병에 걸린 내가 무섭지 않았어?
솔 이: 무섭긴 …. 울고 있는 네 마음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져서 오히려 걱정했는 걸?
깨달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울고 있는 내 마음이 그려진다니?
솔 이: 그럼! (마치 비밀을 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난 앞이 안 보이지만 …. (가슴에 두 손 을 얹으며) 이 마음으로 볼 수 있거든.
동 이: (못 믿겠다는 듯) 에이, 거짓말! 어떻게 마음으로 보냐? 마음에 눈이 있어? 눈이 있냐고?
깨달이: 아냐! 난 알 것 같아! 솔이는 그동안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었던 거야. 두 눈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 두 손을 얹으며) 이 마음으로 말이야.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그리다’, ‘마음으로 보다’와 같이 마음과 조응하는 어휘들이 재현하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상징적 표상 가운데에서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위상은 과연 무엇일까요? 사전식 풀이를 보면 마음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라고 정의돼 있습니다. 국어과 교과의 교수·학습에서 눈에 띄게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마음’이고, 이 ‘마음’을 중심으로 각 영역별 교수·학습 과정이 전개되며, 이 ‘마음’을 기반으로 다양한 학습 활동이 펼쳐진다는 점을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물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그 인물의 마음 헤아려 보기(문학), 상대의 마음과 기분을 헤아리며 듣고 말하기(듣기·말하기), 인물의 마음을 헤아리며 읽기(읽기),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는 편지쓰기(쓰기), 속담 등의 관용 표현에 담겨 있는 인물의 마음을 짐작하며 담화와 제재글의 상황과 맥락 파악하기(문법) 등이 곧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마음’일까요? 마음의 보물상자와도 같은 저마다의 ‘마음결’은 마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샘과 같아서 육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어떤 ‘아포리아(aporia)’의 길로 인도함으로써 무엇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비록 앞이 안 보이지만 맑은 소리 모아 듣고 대상을 마음으로 곱게 그려 생생하게 볼 줄 아는 ‘소리~ 솔솔~’ 솔이, 언제 어디서나 ‘도움~ 찬찬~’ 토움이로 인물의 성격을 구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솔이와 토움이의 이름 그 자체에 ‘마음에도 눈이 있다.’는 깊은 울림의 목소리가 여실히 녹아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 『까막골 보임누리꽃의 비밀』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긋닛긋닛하게’ 이어 주는 마음결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긋닛’은 끊어짐과 이어짐을 뜻하는 ‘단속(斷續)’의 옛말로 끊겼다가(긋) 이어지기(닛)를 반복하며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순우리말이에요. 앞이 안 보이는 솔이에게 놀림과 따돌림을 일삼았으나 솔이의 진심을 깨닫고 진정한 우정의 관계를 회복해가는 과정이 이 ‘긋닛긋닛’이라는 단어에 잘 나타나 있어요. 아슬아슬 곧 끊어질 듯 하지만 우정의 끈은 끝내 끊어지지 않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마법처럼 다시 이어짐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얄궂고 심술궂은 언행으로 서로 마음의 상처를 입히기도 하지만 저마다의 마음샘에 꽁꽁 숨기고 있는 참된 마음의 결을 소중하게 길어 올려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긋닛긋닛하게 이어가며 옹골찬 우정의 나무로 우뚝 성장할 수 있게 돕는다는 점에서 솔이와 토움이는 튼실한 밤나무 묘목을 기대하며 심는 세톨박이 속 징검톨 씨앗을 떠올리게 합니다. 징검톨의 한자어는 ‘율설(栗楔)’로서 문설주 ‘설’자를 씁니다. 문짝을 달 때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문기둥(문설주)’인 것처럼 양 옆의 밤톨을 튼실하게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가운데에 있는 바로 이 징검톨이에요. 무시무시한 전염병의 공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임누리꽃’을 얻기 위해 까막골로 모험의 길을 떠나는 솔이의 곱디 고운 마음결, 그리고 그에 공감하고 감응하며 선뜻 함께 길을 떠나는 토움의 착한 마음결은 세톨박이 밤톨 가운데에서 양쪽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는 징검톨을 쏙 빼닮았어요.
지난 2019년에 시작되어 올해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 전염병이 지속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극심한 고통과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우리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학력의 양극화가 심화된 현상일 텐데요. 학력 격차라고 하는 거대 담론에 가려져 자칫 간과할 수 있는 생활습관 붕괴라든가 정서적 고립 현상 등을 특히 눈여겨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면서 학습 퇴행뿐만 아니라 교사·돌봄 인력과의 접촉 부족을 비롯하여 특히 또래와의 학습 상호작용 부족 등 주변 환경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학력 격차, 생활습관 붕괴, 정서적 고립 현상에 봉착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교실’이라고 하는 장소, 즉 공간의 결핍이 아닐까 합니다. 교실의 공간성을 정지시킨 것은 코로나19라고 하는 재난이고 그 재난은 우리의 교실을 결국 화면으로 바꿔 놓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이란 담화 공동체 안에서 함께하는 ‘몸’을 기반으로 주고받으며 얻기 마련인데, 화면으로 교체된 교실에서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가르침과 배움이란 이제 기대하기 어려운 꿈이 되어버리고 만 현실을 결코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학습이란 추상적인 지식의 묶음을 일방적으로 전달받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은 상식입니다. 적극적 참여와 긍정적 상호 개입, 이른바 ‘실행’을 통해 담화 공동체의 온전한 일원으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것이 진정한 배움이며 이를 통해 학습자들은 비로소 그들만의 언어를 기반으로 행복한 학습 경험을 하며 인성과 인품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까막골 보임누리꽃의 비밀』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교실의 부재와 몸의 부재가 가져온 정서적 고립 현상에 특히 주목하였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함께하고 있으매 비로소 행복한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협동과 협업의 마음가짐에서 어려움에 처한 친구에 대한 이타적 사랑의 마음이 아름답게 피어오르기 마련이라는 메시지가 『까막골 보임누리꽃의 비밀』의 이야기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3. 어린이를 위해 희곡을 쓰시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세요.
첫째, 어린이 독서 환경의 편향성과 고착성입니다. 학교 도서관은 물론이거니와 각 학급의 문고에 비치된 도서 유형이 문학으로 범위를 좁혀 예시하면 그림책, 동화에 편향돼 있고 동시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형편입니다. 하물며 어린이 희곡 문학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자료에 해당합니다. 거울놀이라든가 뜨거운 의자, 정지장면 만들기 등과 같은 다양한 연극놀이를 하고 나서도 아이들은 한결같이 ’연극을 했다.‘고 활동 경험을 이야기 하곤 합니다. 평소와 달리 ’~처럼 되어본‘ 경험을 하며 몸을 많이 움직였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미 ’상상하여 ~처럼 되어보는 활동‘이 연극의 기본 행위임을 ’몸‘으로 체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학습활동에서 극화 학습을 매우 좋아하지만 정작 교실의 학급 문고에는 어린이 희곡 문학이 한 편이라도 온전히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문, 편향적이고 고착적인 독서 환경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둘째, 교과서에 수록된 희곡 문학 제재글의 다양성과 정통성 부재 현상입니다.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 기반한 5, 6학년 국어 교과서에 연극단원이 특화단원으로 편성돼 있고, 극화 학습이 어린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활동임에도 정작 연극단원에 수록된 연극 대본, 즉 희곡 문학의 제재글이 다양성과 정통성 면에서 역부족 현상에 노출돼 있다는 점입니다. 각 교육과정기를 달리 하며 그동안 국어 교과서에 수록해 온 희곡 문학 제재글이 대부분 외국 작품의 번역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희곡 문학 작가의 경우 문학의 정전성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아온 특정 작품 위주로 수록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어린이 희곡 문학 작품 자체가 워낙 척박한 현실에서 시대와 교육 환경의 변화에 조응하고 지금-여기의 어린이 독자의 독서 취향에 부응하는 희곡 문학 제재글을 다양하게 발굴하여 수록하기가 매우 어려운 한계에 봉착해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