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작가] 김은숙 작가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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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작품세계

꽤 오랫동안 동화를 써왔어도 여전히 동화는 내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무한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줍니다. 그 동안 내가 써온 이야기들을 가만히 돌아보니 주로 팬타지 동화를 많이 써왔군요. 물론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만나는 이런저런 희로애락을 소재로 쓴 것도 있습니다만.
나는 ‘모든 동화는 팬타지의 집을 먼저 지은 다음 거기다 이야기를 채워넣어야 한다’고 봐요.
무슨 말인고 하니 본래 동화란 신화나 민담 같은 인류의 이야기의 원천(원샘)에서 발원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따라서 모든 동화(童話)는 동화(動話)라고 생각해요. 앞의 동화(童話)란 말로는 사실 우리가 말하는 동화의 이야기를 설명해줄 수 없어요. 서양의 요정 이야기나 작은 아이들 이야기가 일본을 통해 들어오면서 ‘아이들용 이야기’란 뜻의 일본말을 그대로 쓰고 있는 거지요. 뒤의 동화(動話)는 모든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생명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무한한 상상놀이를 즐길 수 있는 물활의 이야기를 뜻하지요. 세계 곳곳의 신화가 그러하듯이요.
이 물활의 세계에서는 과거.현재 .미래가 한자리에 모여 속삭일 수도 있고 우주 공간도 마음대로 헤엄쳐 다닐 수도 있지요. 그뿐인가요. 보이는 세계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꾸는 순간, 우리의 상상 여행은 시작되면서 누구나 무엇으로든 변신을 할 수도 있어요. 하늘을 나는 새가 될 수도 있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의 마음이 되기도 하지요. 그런가 하면 서로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맺기도 해요. 나의 동화 ‘여왕을 만났어요’에서 ‘장미와 지렁이’ 사이가 바로 그런 경우예요, 그렇다고 팬타지 동화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몰라라 하는  이야기는 아니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낙엽 한 장 만한 바람’)에서 딱 낙엽 한 장 만한 바람에 대해서도 ‘이기심’이라는 잣대를 대는 인간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주고 있지요.
정말이지, 슬픔도 기쁨으로 곱게 치장하고 미움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결 고운 팬타지 동화를 어린이들이 많이 읽었으면 해요. 요즘 우리 어린 친구들이 밝고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보면 어른인 나도 덩달아 즐겁지요.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어요. 보이는 자기 모습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자기 안의 자기를 많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숨을 깊이 쉬어야 건강하듯 깊은 울림이 있는 좋은 판타지 동화를 읽고 사랑과 감사와 겸손이 들어있는 생각의 향주머니를 얻었으면 해요.
  
 
 
*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쓰게 된 동기
 
나는 젊은 시절 학교를 졸업하고 신문사 기자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때 문화부에서 일을 했는데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고 하면서 예술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그들 중 특히 문인들에게 관심이 많았지요. 어릴 때부터 일기를 써 왔거든요. 글을 쓴다는 것이 웬지 나를 조금은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 하면, 일기를 쓰면서 내 모습을 드려다 볼 수 있어 좋았어요.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는 내가 있어 좋았고 기쁠 때 나를 예뻐하는 내가 사랑스러웠어요. 마음 속 깊은데 고여있는 나의 생각을 글로 옮겨 다시 보면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참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톨스토이 할아버지 말처럼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마음이 가는 길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 계기가 바로 글쓰기였지요.
그리고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날로 커가는 생각의 그릇을 보고 얼마나 황홀했는지 몰라요. 그것들을 담고 싶었지요.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그러다보니 본래 조금식 서오던 시의 자리에 동화가 들어앉고 말았어요. 지금은 참 잘 된 일이다 생각하고 있지요. 동화는 시보다 훨씬 전 방위 독자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세상의 모든 어른들도 한때 어린이였으니까요.
 
 
 
* ‘채소야 놀자’ 작품을 쓰게 된 배경
 
제목부터 얘기할게요.
작품을 다 쓰고나면 제목을 다는데 마음고생을 많이 해요. 서점에서 제목을 보고 책을 산다는 어린이나 어른들이 의외로 많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구요. 몇 날 며칠 좋은 제목을 달고 싶어 궁리를 하다가 파아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어요. 채소는 모두 먹는 건데 아이들이 의외로 채소를 잘 안 먹는다는 엄마들의 얘기지요.
‘ 아이들은 무얼 좋아할까?
단연 노는 걸 좋아하지, 맞다.
아이들에게 채소랑 놀게 하자.’
속 이야기는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면서 채소들과 마주하며 얻은 이야기들이예요.
채소의 씨앗이나 모종을 사다 심고 물을 주며 키우는 동안 채소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지요. 나중 나오는 잎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열무의 ‘떡잎 두장’의 실거운 속마음을 볼 수 있었던 것, 봄날, 사람들의 입맛을 돋구는 냉이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서둘러 시집갈 준비(꽃 피우기-‘철 없는 냉이’)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던 것, 모두 내 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고자 하는 팬타지 공간, 곧 환상 놀이터가 있었기에 가능한 발견이었지요.
추운 날, 김장을 하면서 속이 꼭꼭 찬 배추를 흙에서 뽑아 꽁대기를 잘라내고 절이고 양념을 해서 김치를 만든 다음 땅에 묻은 김치독에 넣을 때까지의 전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맙구나, 배추야.’ 하고 절을 했지요.
한포기 김치 안에 장렬한 죽음이 한번도 아니고 다섯번이나 숨어있다니...
그 죽음이 만들어내는 발효식품 김치가 우리네 식탁에서 얼마나 소중한 음식으로 사랑을 받는지를 생각하며 무어든 누구든 희생과 헌신이 없으면 큰 사랑을 받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래요. 아무리 작은 것도 자세히 드려다 보면 거기 큰 뜻이 숨어있어요. 아무리 꼭꼭 숨어있는 물건도 보려는 사람에겐 보이거든요. 여러분들도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보는 것으로 남과 다른 나만의 세계를 꾸며보세요. 마음 안에서. 
 
끝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위의 얘기 속에 이미 다 들어있으니 따로 말 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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