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행신 작가와의 대담
1.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소개해 주세요.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느 작가든 다양한 세계와 만나서 함께한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만들기 때문이지요. 어느 한 세계를 만나 즐겁게 지내다가도 어느 참에는 또 다른 세계와 어울려 다니기를 즐겨하는 것이 작가들이 공통된 성질일 테니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을 쓰는 일을 창작이라고 하지요. 창작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것을 뜻하는데, 작가가 한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새로움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수시로 새로운 세계를 찾아 순례자처럼 떠돌아다니지요.
나 역시 그처럼 늘 새로운 세계를 찾아 헤매는 편이라서 한 마디로 요약하기가 곤란하다고 한 것이랍니다.
그러나 다음 몇 가지로 함께 어울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만나는 대상과 늘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문학의 기능 중 하나가 ‘카타르시스’라는 것이 있지요. ‘카타르시스’는 ‘정신적 승화’라고 하는데,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참한 운명을 보고 간접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두려움과 슬픔이 해소되고 마음이 깨끗해지는 일을 말하지요.
우리가 슬픈 영화의 주인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지요. 그것은 그 주인공의 처지에서 불쌍함과 연민의 정이 생겨나기 때문이지요.
이런 마음은 주인공과 내가 같은 처지라고 생각할 때 더 큰 공감력을 일으키게 되지요. 이렇게 같은 처지처럼 생각하는 정신 작용을 ‘동일화’라고 해요.
‘동일화’는 대상과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니까, 서로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글을 읽으면 독자들의 마음도 따뜻하고 포근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내 동시를 만나면 마음의 위로를 얻어 아픔이나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 곧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답니다.
둘째는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 만나고자 합니다.
어린이들은 놀이를 매우 좋아하지요. 그래서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늘 서로 뒤엉켜 뒹굴곤 하지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놀잇감이요.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도 지속적으로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곤 한답니다. 어린이들은 이 모든 놀이를 통해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라게 되지요. 이를 유희정신이라 하는데, 이 유희정신을 동시 속에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셋째는 늘 새로운 눈 즉, 새로운 시적 관점으로 세계와 만나고자 합니다.
창작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똑같은 세계일지라도 늘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만나고자 합니다. 그런 새로운 눈과 마음으로 만나 나눈 이야기들을 찾으려고 많은 시간을 소비하기도 한답니다.
넷째는 이렇게 만난 세계를 단순 명쾌하게 이미지화하고자 노력합니다.
시는 작가가 만난 세계와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저는 그 이야기의 세계를 복합적이거나 중의적인 표현보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글그림(이미지)으로 그리고자 합니다.
다섯째 우리말의 특성이 잘 드러나게 쓰고 싶습니다.
우리말은 우리말 나름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말 속에는 우리들의 습성과 정신이 들어 있기에 매우 익숙한 공기와도 같지요. 그러므로 우리말의 특성을 잘 살려 동시를 쓴다면 당연히 매우 친숙한 동시가 되겠지요.
2. <아하, 그렇구나>는 어떻게 탄생되었나요?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사회, 과학, 체육, 음악, 미술과 같은 교과를 분리해서 공부하게 됩니다. 하지만 1학년과 2학년은 이들 교과를 모두 합쳐서 ‘통합교과’라는 하나의 교과로 공부하게 되지요. 그 이전에는 즐거운 생활, 슬기로운 생활, 바른 생활이라고 하던 교과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모두 한 교과로 합쳐서 ‘통합교과’로 한 것이지요. 이는 과학교과든, 사회교과든, 도덕교과든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지요.
이런 생각들이 더 커지고 다양해져서 현재는 ‘융합교육’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답니다. ‘융합교육’은 ‘STEAM 교육’이라고도 하는데, 과학의 science, 기술의 technology, 공학의 engineering, 예술의 arts 그리고 수학의 mathematics의 각 첫 글자를 따서 그리 말하는 것이지요. 즉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입장에서 시각과 관점을 갖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지요.
<아하, 그렇구나>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출발하였어요. 과학과 예술의 만남, 즉 과학적인 사실과 문학적인 상상력을 한 자리에 펼쳐보이고자 한 것이랍니다. 한 부분의 전문가도 중요하지만 여러 분야를 어우를 수 있는 인재도 더욱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저는 동시작가로서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고 고심해 왔어요. 내용면에서 뿐만 아니라, 형식면에서도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이 융합동시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비록 융합동시집이 전체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많겠지만 내가 첫발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두고자 해요.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독자들도 융합동시집을 꼼꼼히 읽어가며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작가의 창의적인 의도들을 찾아내어 스스로를 창의적인 사람으로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어떤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으며, 어떻게 표현하였는가를 꼼꼼히 읽다보면 길이 보일 것이라 생각한답니다.
3. 어린이를 위해 동시를 쓰시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세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였기에 많은 시간을 학생들과 생활했어요. 자연히 그들의 생활이나 생각, 기쁨이나 아픔도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지요. 아마 그 영향이 가장 컸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동시를 통해 우리 어린이들을 가르치려는 경향이 강했지요. 왜냐하면 동시의 특성 중에 ‘교훈적인 기능’이 있다고 배웠기 때문이었어요. 또한 내가 교사였잖아요. 그래서 아마 동시를 통해 뭔가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나 봐요.
하지만 요즘은 ‘가르치는 교훈’보다는 문학이 갖는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가에 고민하는데, 그 답 중 하나가 ‘감정의 흔들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감정의 흐름’을 다루는 이야기를 동시로 나타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감정의 흐름’를 잘 활용하다 보면 분명 우리 어린이들에게 앞에서 말한 ‘카타르시스’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답니다.
4. 앞으로 꼭 쓰시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아하, 그렇구나>는 3학년 과학 교과서를 대상으로 지은 작품들이지요. 계속해서 4학년 5학년 6학년 과학 교과서를 대상으로 한 융합동시집을 만들고 싶어요.
요즘 날마다 4학년 과학 교과서와 만나고 있는데, 쉽지 않은 작업이네요. 한 작품이 나오는데 한 달 이상이 걸리기도 하네요. 너무 어려워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격려해 주고 응원해 준다면 더 좋은 작품들이 탄생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렇게 해 줄 거지요?
그리고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동화도 좀 써보고 싶어요. 그 동안 동화에 대한 애정은 갖고 싶었지만, 감히 함께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동화를 쓰더라고 정말 진지하게 도전해 보고 싶어요. 심심하니까, 아니며 그냥 한 번 써보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진지하고 열정이 깃든 그런 작업에 도전하고 싶어요. 만일 그런 도전의식이 성숙되지 않는다면 동화를 쓰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5. 작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것에서 보냈어요. 그 시절에는 마냥 들로 산으로 나돌아 다녔지요. 좋아서 다닌 것이 아니라, 부모님 심부름으로 논밭으로 다녔고, 땔나무 때문에 높고 낮은 산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렸어요. 그러다가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는 바닷가에서 주로 살게 되었어요. 그런 농어촌형 기질이 저를 키웠나 봐요.
농촌형 사람들은 순박해요. 세상살이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순응하며 살아가지요. 봄이 오면 정성껏 논밭을 일구어 씨 뿌리고, 가을이 오면 기쁜 마음으로 자연에게 감사하며 오곡백과를 거두어들이지요. 모두 자연적인 순서와 질서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살지요. 씨 뿌리자마자 곧바로 수확하려고 낫을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순박함으로 살아가지요. 아마 그런 순응원리가 내 기질 속에 스며들었나 봐요.
그래서 저는 초식동물처럼 비교적 매우 온순하고 여리답니다. 그리고 내성적인 면이 강해서 조용하게 사색하는 편이랍니다. 그런 성격 탓에 상상놀이에 곧잘 빠지고, 사물과의 대화를 즐겨했답니다.
동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후에는 창작공부를 제법 열심히 하였지요. 관련 책을 많이 읽었고, 시도 많이 읽었답니다.
6. 훌륭한 글을 쓰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려 주세요.
우선 문학적 감수성을 키우고 상상놀이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감수성이란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인데요, 그 성질이 예민한 사람을 보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라고 한답니다. 그렇담 문학적 감수성은 문학을 통해 길러지는 감수성을 말하겠지요.
감수성은 나는 사물과 다정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상상놀이를 하다 보면 자연적으로 길러집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면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동일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남을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 바탕이 된답니다. 문학은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먼저 길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런 문학적 감수성은 어떻게 길러질까요? 당연히 문학작품과 많이 만나다 보면 길러지겠지요.
중국의 구양순이라는 분이 글을 잘 쓰려면 ‘3다’를 하라고 하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