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되고 싶은 연어의 꿈, 그 긴 여정을 담은 생태동화
연어의 이동경로에 따른 일생과 생태정보를 알 수 있는 책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목숨을 걸고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은 뒤 죽는 연어들. 연어의 치열한 일생에 경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연어가 숲과 바다를 이어주는 전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다는 숲으로부터 낙엽, 가지 등 매년 엄청난 양의 양분을 얻고, 또 숲은 야생동물들이 먹다 버린 연어를 통해 양분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숲 속의 나무들은 그늘을 드리워 새끼 연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적당한 온도를 만들어 주고 큰 나무 조각은 새끼 연어의 좋은 은신처가 되어 주기도 한다.
결국 숲이 건강하지 못하면 강과 바다도 병들기 마련이다. 연어들도 마찬가지이다. 연어는 사람이 흘린 땀 한 방울을 무려 800억 배로 희석시켜도 정확하게 식별해낼 만큼 후각이 극도로 발달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발달한 후각으로 연어는 아무리 짧은 기간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모천의 냄새를 죽을 때까지 구분할 수 있고, 그 냄새를 따라 바닷가로부터 자기가 태어난 하천을 정확하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 연어도 돌아오는 길을 잃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은 숲과 연어의 상생관계를 바탕으로 해서 연어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 동화이다. 연곡천의 가문비나무는 어미처럼 새끼 연어 은빛이를 품어 준다. 제 어미가 죽어서 숲의 양분이 되었기 때문에 가문비나무가 새끼 연어의 어미라고 말하는 것은 철학적인 대답일 지도 모른다. 독자들은 연곡천에서 태어난 주인공 새끼 연어 은빛이와 그 무리들이 동해, 북태평양, 알래스카, 베링해와 캄차카 반도를 헤엄쳐가는 긴 여정을 따라가보게 된다. 그러면서 알에서 갓 깬 새끼연어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생김새는 어떤지 또 바다로 나갔을 때는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또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돌아오는 과정이나 알을 낳는 과정이 박진감있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생명에 대한 존경과 더불어 생태공부까지 저절로 할 수 있게 된다. 이 동화가 끝나면 연어의 생태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내용이 세밀한 일러스트와 함께 정리되어 있다. 알이 부화하는 과정이나 치어기 때 먹이, 연어들의 이동 경로, 연어의 종류, 산란기 때 암컷과 수컷의 생김새 차이점 등이 그 내용이다. 또 해마다 남대천 연어잡이 때 이루어지는 인공수정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연어 회귀율이 급감하고 있는 현실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연어 알, 그리고 숲은 연어 자신이다
연어의 죽음이 아름다운 이유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낳아준 어미를 볼 수 없다는 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두렵고 외로운 일일 것이다. 주인공인 새끼 연어 은빛이는 알에서 홀로 깨어나 엄마를 찾아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자 키가 큰 가문비나무가 어미를 자처하며 포근하게 감싸준다. 알을 낳고 죽은 어미 연어는 다른 동물들의 먹이가 되거나 썩거나 해서 고스란히 숲 속에 스며든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가문비나무는 모습은 다르지만 자신 속에 어미 연어가 깃들어있다고 말한다. 가문비나무는 몸을 흔들어 잔가지와 나뭇잎을 강물 위에 떨어뜨려 주고, 그것은 물속의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플랑크톤은 새끼 연어들의 먹이가 된다. 이렇듯 가문비나무는 은빛이를 자식처럼 보살펴준다. 다른 연어 새끼들도 나무 하나씩을 제 어미로 여기며 자란다.
연어들은 그들의 운명이 그렇듯이 서서히 바다 쪽으로 내려간다. 완전한 바닷물고기가 된 은빛이 무리는 더 멀리 헤엄쳐가서 북태평양에 이르게 되는데 거기서 사리타 등 다른 곳에서 살던 연어 무리도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이들이 무리 지은 모습은 고래보다도 더 거대한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힘차게 헤엄쳐나간다. 그러면서 함께 모여 있을 때 두려움을 딛고 용기가 샘솟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불곰이나 사람의 작살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을 온갖 위험 속에서도 살아남아 쉼 없이 헤엄쳐 온 연어들은 산란기가 되자 그동안 정든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게 된다. 각자 자신의 고향으로 알을 낳으러 가야 하는 것이다. 은빛이의 짝인 핑크도 알을 품어서 불룩해진 배를 하고는 알을 낳으러 연곡천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하루에 100킬로미터가 넘는 바닷길을 헤엄쳐서 그들은 다시 동해바다에 도착한다. 1만 3천 킬로미터가 넘는 고달프고 긴 여행길에서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
열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상류를 향해 헤엄쳐간 연어들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거슬러오른 은빛이는 마침내 가문비나무와 재회를 한다. 은빛이는 핑크와 함께 알을 낳은 뒤 죽어가면서 가문비나무에게 말을 건넨다. “나의 엄마는 당신 안에 있지요?” “나는 가문비나무가 되고 싶어요. 당신이 되고 싶어요.” 제 어미가 그랬듯이 은빛이도 다시 숲 속의 나무로 스며들어 새끼가 커 가는 것을 지켜볼 것이다. 이 책의 표현처럼 ‘연어의 알, 그것은 연어 자신’일 뿐만 아니라 제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숲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은빛이는 연어의 죽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그제야 비로소 만나지는 못했지만 제 어미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죽음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은 죽지만 또 다른 형태로 생명을 이어가는 거대한 자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추천사
이 책 『숲이 된 연어』는 숲의 품에서 태어난 연어 이야기입니다. 연곡천에서 어미처럼 자신의 그늘로 품어주는 가문비나무와 새끼 연어의 사랑, 숲의 품을 떠나 먼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자신이 태어난 연곡천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 한 편의 동화를 읽다보면 연어의 일생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에 대해 함께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세밀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이야기와 함께 펼쳐져 있어서 재미를 더해주고 있지요.
-추천사 중에서(이은욱 | 생명의 숲 공동운영위원장․한그루녹색회 회장)
저자 소개
● 글쓴이 김숙분
1986년 '아동문학평론'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1995년에는 제14회 새벗문학상을 받았고 이듬해엔 국민일보 신앙시공모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펴낸 동시집으로는 1999년에 세종아동문학상을 받은 『산의 향기』와 2002년 은하수동시문학상 대상을 받은 『해님의 마침표』가 있다.
2005년에는 첫 장편동화 『숲으로 간 고양이』와 숲에 전해져오는 옛이야기를 엮은 『숲에서 이야기가 꿈틀꿈틀』이 출간되었다.
● 그린이 이상훈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동국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나왔다. 2001년 한국출판미술대전 동화부문, 순수부문에서 입선했다. 지금까지 그린 책으로는 『꽃이 왜 없을까?』『톡톡톡 날아가는 씨』『톨스토이가 들려주는 아침 명상 동화』『나무도 날개를 달 수 있다』들이 있다. 공기좋은 시골에서 따뜻하고 맑은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