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동시와 그 시절의 이야기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일제강점기 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 전문이다. 권태응은 1918년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공립보통학교와 경성제일고보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항일비밀결사 활동으로 1939년 투옥돼 옥고를 치른다. 폐결핵으로 이듬해 풀려났으나, 병이 악화되어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만 33세로 생을 마감한다. 동시 「감자꽃」은 일제의 창씨개명에 반항하는 동시로,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다 해도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다.
이 책은 권태응의 동시 16편에 김경구 작가가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초등학생 지우가 권태응 동시를 한 편 읽으면, 할머니가 그 동시와 관련된 예전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권태응 동시는 토속적인 내용을 소재로 쓴 데다, 거의 100년에 가까운 이전 시대의 이야기여서 어린이들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시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100년 전의 어린이들이 살던 마을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없는 살림일수록」에서는 껌을 달력이나 벽에 붙여놓고 몇 번이나 씹던 이야기가, 「동무 동무」에서는 부모님 드리려고 쿡쿡 호미로 냉이를 캐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감자꽃」에서는 행여 감자에 상처를 낼까 조심조심 캐던 배고픈 시절의 이야기가, 「서울 가는 뻐스」에서는 모처럼 타 본 기차가 신기해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기다리던 비 1」에서는 단비를 고마워하는 농부들의 이야기가, 「개울에서」는 다듬이질로 속을 가라앉히던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정자나무」에서는 정자나무 아래 모인 정겨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땅감나무」에서는 땅감을 먹으며 도란도란 정을 나누는 가족의 이야기가, 「옥수수」에서는 옥수수를 먹으며 참외 원두막을 지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박 농사 호박 농사」에서는 아기를 낳은 딸에게 호박에 꿀을 넣어 다려 주는 친정어머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동시들은 봄과 여름의 이야기들이다.
「떠나보고야」에서는 가족을 위해 서울 공장에 취직한 숙희의 애달픈 이야기가, 「고개 숙이고 오니까」에서는 부모님이 안 계시지만 할머니와 꿋꿋하게 살아가는 흥수의 이야기가, 「살찌는 벼」에서는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추수를 하며 행복해하는 이야기가, 「김장밭」에서는 김장을 나누는 은아와 진구네의 이야기가 가을철 이야기로 펼쳐진다.
「춥긴 머 추워」에서는 날씨가 추워도 밖에서 용감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하얀 눈」에서는 하얀 눈으로 가래떡을 만들어 나눠먹고 싶은 길예의 이야기로, 겨울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시와 함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알게 되어 가슴 한편이 아파온다. 하지만 힘겨웠던 그 시절에도 가족과 친구, 이웃의 사랑은 더욱 끈끈한 정으로 뭉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정을 어찌 일본이 끊어놓을 수 있겠는가? 우리 민족은 그 어떤 상황에도 그저 우리 민족일 뿐이라는 애국심과 자긍심이 가득 담긴 이야기들이 독자들을 감동케 한다. 게다가 동시를 당시의 맞춤법 그대로 옮겨 와, 더욱더 시대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차례
<봄>
없는 살림일수록-용석이네 이야기
동무 동무-미옥이네 이야기
감자꽃-동민이네 이야기
<여름>
서울 가는 뻐스-재만이네 이야기
기다리던 비 -경자네 이야기
개울에서-영섭이와 영순이네 이야기
정자나무-승희네 이야기
땅감나무-종진이네 이야기
옥수수-현숙이네 이야기
박 농사 호박 농사-귀동이네 이야기
<가을>
떠나보고야-숙희네 이야기
고개 숙이고 오니까-흥수네 이야기
살찌는 벼-춘자네 이야기
<늦가을>
김장밭-은아네 이야기
<겨울>
춥긴 머 추워-동준이네 이야기
하얀 눈-길예네 이야기
작가 소개
글쓴이 김경구
1998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2009년 사이버중랑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라디오 구성 작가, 동요 작사가로 활동하면서 신문에 글도 연재한다.
지은 책으로는 동화집 『방과후학교 구미호부』, 『와글와글 사과나무 이야기길』, 동시집 『꿀꺽! 바람 삼키기』,『수염 숭숭, 공주병 우리 쌤』, 『앞니 인사』, 『사과껍질처럼 길게 길게』, 청소년 시집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풋풋한 우리들의 시간들』, 시집 『우리 서로 헤어진 지금이 오히려 사랑일 거야』, 『눈 크게 뜨고 나를 봐 내 안의 네가 보이나』, 『가슴으로 부르는 이름 하나』,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바람으로 불어온 그대 향기 그리움에 날리고』 등이 있다.
이메일: gu7782@hanmail.net
그린이 정은선
광고디자인을 전공했고, SI 그림책 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동안 그린 책으로 『말 주머니』, 『박 중령을 지켜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중한 것들』,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청춘에게』 등이 있다.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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